밤하늘공작소
작별인사(이영하) 본문
미래에 우리가 살아갈 세상과 그 세상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도 굉장히 많은 질문을 해보았다.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
인간이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주인공이 자신이 등록되지 않는 휴머노이드로 인식되어 잡혀 온 후의 이야기다. 이러한 단어와 문장들은 많은 생각할 것들을 준다. 몸의 일부 혹은 전부가 로봇의 부품이 되고, 더 나아가 나의 뇌 즉 정신이 인터넷 상에 존재한다면 더이상 나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부를 수 있는가? 또 나의 몸과 뇌는 내가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가 "윤리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으니까요.
죽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거든요."
"생존 본능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만약 이 휴머노이드에게 애초에 선택권이 있었다면
애완용 휴머노이드로 태어나겠다고 결정했을까요?"
...
"다시 살아난다 해도 이 휴머노이드에게는
별로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저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
"그게 정말 이 휴머노이드를 위한 거라고 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이 휴머노이드가 앞으로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도 모르면서요."
민이라는 친구를 잃은 후 선이와 달마의 논쟁 중의 문장들이다. 이야기에서는 휴머노이드를 놓고 논쟁을 벌이지만,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다. 죽은 혹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옳은가? 그 살리는 것 혹은 살리려 시도하는 것을 그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이 될 수 있다. 사람(이야기에서는 휴머노이드)은 살아가면서 기쁨과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기쁨은 고통을 상쇄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죽었거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 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만족을 위한 이기심이 아닐까?
"어디까지가 '나'라고 할 수 있는거야?
...
새로운 몸을 가지고 다시 태어날 민이는 예전의 그 민이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어디까지 '나'일까?
...
몸의 모든 부품을 교체할 수 있다면,
그 부분들은 '나'가 아닌 거잖아."
"그렇지 뇌가 그 경계일 거야. 의식은 거기서 생겨나니까."
"기억을 모두 잃기도 하고, 사상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뒤바뀌기도 하잖아. 또 약물에 중독되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도 그것은 그대로 나일까? 나일 수 있을까?"
'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새로운 팔과 다리, 몸을 모두 부품으로 바꾼다면 그 부분은 더 이상 '나'가 아닐 것이다. 의식이 생기는 곳이 뇌도 그 경계가 될 수 있을까? 기억을 잃기도 하고 사상과 가치관이 바뀌면서 전과는 다른 행동과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약물 또는 술에 중독되어 다른 사람이 되어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나도 그대로 '나'일까? 몸도 의식도 '나'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나'일까? 바뀐 내가 '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나?
많은 부분이 생각할 것을 많이 주었지만, 특히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는 곳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전부터 알았던 안락사의 대한 이야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고통을 주면서도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많은 생각을 했었다. 작별인사를 읽으며 이제 곳 올 것이고, 오고 있는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필요할 질문과 답을 찾아가길 바란다.